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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conf 발표 후기: 첫 발표를 도전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발행 시간 오전 11:19

작년 FEconf를 스태프로 참여한 데에 이어 이번엔 감사히 라이트닝토크 스피커로 참여할 수 있었다. 끝나고 나니 하길 너무 잘했다, 안 했으면 너무 아쉬웠겠다는 생각이지만 사실 발표 직전까지도 내가 이걸 왜 한다고 했을까 하면서 고통스러워했다. 나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얘기하는 걸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구제불능의 미루기 아티스트에다가, 어디 자랑할만한 기술적 성취를 하지도 않았다. 그런 내가 어떻게 FEconf에서 첫 컨퍼런스 발표를 도전하게 되었는지 적으면 발표에 도전해보고 싶은데 용기가 안나는 분들께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후기를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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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향인이 제 발로 발표하기까지

작년 한 해 동안 위민후코드 서울에서 운영진으로서 밋업과 컨퍼런스를 개최하며 정말 열심히 활동했었다. 위민후코드 서울은 IT 업계에 여성의 목소리가 더 많아져야 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는 커뮤니티이다 보니 운영진분들 중 여러 밋업, 세미나, 컨퍼런스에서 발표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그런 분들을 곁에 두면서 나의 경험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고, 발표를 통해 평소라면 만날 수 없었을 사람들과 연결되는 접점을 만들 수 있다는 걸 배웠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언젠간 나도 발표를 하게 될 거라고 자기세뇌(?)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에겐 무대공포증이라는 오래된 컴플렉스가 있다. 이 컴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나름 여러 노력을 해봤지만 여전히 발표할 때가 되면 머리가 새하얘진다. 그래서 내게 발표는 웬만하면 안하고 싶은 일이긴 하다. 그런 내가 실제로 발표에 도전하기까지 징검다리가 되어준 2개의 계기가 있었다.

커뮤니티 드리븐 발표

첫째는 위민후코드 서울 운영진인 정원님과의 Sharing Session이다. 정원님의 팀은 매주 한번씩 Sharing Session을 갖는데, 개발하며 겪은 문제 상황을 어떻게 해결했는지 10분간 발표하는 형식이라고 한다. 위민후코드에서도 이 형식에 맞춰 온라인으로 발표 공유회를 해보면 어떻겠냐는 정원님의 제안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사실 이 때 나는 발표를 준비하지 못했지만 기술 발표를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발표 주제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한 감을 익히는 게 필요하다는 교훈을 얻었다. 이때 마침 FEconf 라이트닝 토크 CFP를 받고 있어서 다같이 FEconf 라이트닝 토크 연사자로 지원해보고, 매주 컨퍼런스 영상을 하나씩 보면서 함께 발표를 준비하면 어떻겠냐는 얘기를 했었다. 이때 바로 지원하지는 않았지만 이 세션 덕분에 FEconf 라이트닝 토크에 지원해보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다.

둘째는 역시 위민후코드 서울 운영진인 현아님의 FOSSASIA summit 발표이다. FOSSASIA summit은 아시아 최고의 오픈소스 기술 행사로, 오픈소스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전세계적으로 공유하는 곳이다. 올해 FOSSASIA 행사는 베트남에서 개최됐는데, 위민후코드 서울도 한국 오픈소스 커뮤니티 연합 부스의 Exhibitor로 함께 했다. 함께 부스를 운영했던 분들은 대부분 오픈소스 커뮤니티 오거나이저로 발표를 하셨는데, 그중에서도 현아님은 딥러닝 프레임워크 오픈소스 JAX에 대한 발표를 하셨다. 한국어로도 발표해볼 엄두를 못내는 나에게 현아님이 글로벌 컨퍼런스에서 영어로 발표하는 걸 지켜보는 경험은 큰 동기부여가 되었다. 현아님이 올해 발표를 꼭 해보라고 응원해주신 덕분에 실제로 발표에 도전할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CFS 제출 1시간 전

사실 CFS(Call for Share) 작성 폼을 제출하게 만든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올해도 FEconf에 꼭 가고 싶었다는 바람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한번도 컨퍼런스에 당첨되어 본 적 없는 추첨운 제로의 인간이었다. 0%에 가까운 확률에 희망을 걸 수 없을 만큼 FEconf에 가고 싶었다. 그래서 컨퍼런스에 참여하는 가장 쉬운 방법인 스피커 지원에 도전한 것이다. 사실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마감 1시간 전에 겨우 CFS 폼을 작성해 제출했다. 그래서 FEconf로부터 CFS 선정 결과를 담은 메일을 열어볼 때까지도 일말의 기대를 안 했다. 하지만 믿기지 않게도 메일에는 발표자로 선정되었다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오프라인 발표 무경험자인 나의 첫 발표 기회 장소가 FEconf 라이트닝 토크…? 이게 된다고…?! 하는 감상과 동시에 내가 뭔가 사고를 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선정 안내 메일을 받은 게 6월 12일이고 행사는 8월 24일이니까 2달이나 남았잖냐. 그 안엔 내가 하겠지. 라는 합리화로 애써 불안한 마음을 잠재웠다. 하지만 그때까진 몰랐다. 발표 시작 30분 전까지도 발표 스크립트를 작성하고 있을 줄은…

기술적 성취라고 말할 게 없었던 내가 스피커로 선정될 수 있었던 이유는 3가지가 있는 것 같다. 첫째, 운이 좋게도 올해 FEconf에 처음으로 Lighting Talks 세션이 생겼다. 엄청난 기술적 인사이트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은 메인 세션과 달리 라이트닝 토크는 성장 경험을 공유하기 위한 자리로, 처음 발표에 도전하는 분들에게도 열려 있다. 처음 스피커로 지원한다면 라이트닝 토크에 도전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둘째, 매주 컨퍼런스 영상을 한 개씩 보면서 무엇이 기술 발표의 주제가 될 수 있는지 감을 익힌 덕분에 발표 주제를 정하기 좀 더 수월했다. 사실 업무를 하면서 트러블슈팅은 매일 하지만 해결하고 보면 별 게 아닌 것 같아서 이걸 굳이 공유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을 때가 많다. Sharing Session을 할 때 가장 어려웠던 부분도 발표 주제를 선정하는 것이었다. 그때 기술 발표를 꾸준히 봐야 주로 어떤 주제로 기술 발표를 하는지 감을 잡을 수 있겠다 싶었고, 챌린저스에서 매주 컨퍼런스 영상을 보고 인증하는 챌린지를 시작했다. 그래서 혹시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분이라면 챌린지를 통해 컨퍼런스 영상 보는 습관을 들이는 것을 추천한다. 셋째, 발표 드리븐 개발을 선택한 것이다. 사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난 경험 중에 발표 주제로 삼을만한 게 없었다. CFS를 제출할 때가 5월 말이었는데 발표는 8월이었으니 두 달 반 정도의 시간이 있었다. 그래서 과감히 그 두 달 안에 해낼 요량으로 미래의 경험을 주제로 제출했다. 그것이 선정됐다는 메일을 받았을 때 앞길을 더 막막하게 만든 이유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발표를 해야한다는 강력한 의무 덕분에 원래 하고 싶지만 계속 미뤄뒀던 일을 해낼 수 있어서 결과적으로는 럭키비키 엔딩이 되었다.

FEconf에서 준비해준 것들

FEconf 오거나이저분들은 라이트닝 토크 스피커들을 위해 중간 워크샵과 컨퍼런스 전날 리허설 기회를 만들어주셨다. 라이트닝 토크 스피커들은 같은 시간에 발표하는 사람들별로 그룹이 나뉘어졌는데 조원들끼리 온라인으로 만나 구상하고 있는 내용을 공유하는 시간도 있었다. 이렇게 같이 발표하는 사람들에게서 피드백을 받았던 게 큰 도움이 되었다. 내가 준비한 발표 주제는 ‘사이드프로젝트로 웹 접근성 시작하기’ 였는데, 나는 주로 웹 접근성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발표를 들으러 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웹 접근성의 정의는 생략하려고 했는데 왜 웹 접근성이 중요한지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피드백을 받은 덕분에 웹 접근성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좀 더 친절한 발표로 다듬을 수 있었다. 또 불필요하게 시간을 잡아먹는 부분, 개념적 오류에 대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좋았다. 행사 준비만으로도 많이 바쁘실 텐데 스피커들을 위해 이런 시간을 만들어주신 오거나이저분들의 배려가 참 감사했다.

발표 드리븐 개발

급하게 결론부터 말하면 발표는 잘 마쳤다. 하지만 컨퍼런스 일주일 전부터 매일 ‘발표 후기를 쓰고 있는 내가 오긴 올까’ 생각했었다. 발표를 진짜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서 발표한다고 어디에 말도 못했고 컨퍼런스 전날에 겨우 발표 자료를 완성해서 올리고 나서야 SNS에 FEconf에서 발표한다고 올릴 수 있었다. 이런 TMI를 굳이 적는 이유는 혹시 나와 비슷한 미루기 아티스트적 성향을 가지고 있어 발표를 망설이고 계신 분이 있다면 이런 사람도 발표를 할 수 있는 용기를 드리기 위해서다. 하지만 주의할 것이 있다면… 과정이 매우 고통스럽다. 그리고 웬만하면 저를 따라하지 마시길.

발표를 하고 얻은 것

발표를 마치고 나서는 그간의 고통스러운 과정들이 모두 잊혀질 만큼 발표하기 잘했다고 생각했다. 발표를 통해 웹 접근성에 관심 있는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는 접점이 생겼기 때문이다. 사실 업무를 하면서 웹 접근성을 고려하기가 어렵고, 주변에 웹 접근성을 중요시 하는 사람들을 찾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발표를 들으러 오신 분들이 생각보다 많았어서 사실 웹 접근성에 관심 있는 분들이 많다는 걸 체감할 수 있었다. Q&A 시간 때 실제로 업무에서 웹 접근성 대응을 위해 시도하고 계신 방식을 공유해주신 분이 있었는데, 그 분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서 따로 커피챗을 하기도 했다. 그분께서 들려주신 이야기에 많은 영감을 받을 수 있었다. 또 링크드인으로 발표를 들어주셨던 분들이 댓글을 남겨주시기도 하셨는데, 그렇게 알게 된 분들과 함께 추후에 같이 웹 접근성 스터디를 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웹 접근성에 관심은 많지만 업무에서 대응하기 어렵다는 핑계로 부채감만 느끼고 실제로 뭔가를 개선해 볼 시도를 못했었다. AOA11Y 유튜브 채널에 웹 접근성에 대한 좋은 영상이 많아서 꾸준히 영상 보면서 공부해야겠다고 생각만 하고 실천에 옮기지는 못하고 있었다. 이번에 발표를 준비한 덕분에 웹 접근성에 대해 더 공부해보는 계기가 되어서 좋았다.

발표에서 아쉬운 것

발표를 준비하는 데에 집중하느라 Q&A 시간을 잘 준비하지 못한 게 아쉽다. 원래는 한 세션에 10명 정도 인원이 대화할 거라고 예상했었는데 실제로는 인원이 2~3배는 됐던 것 같다. 인원이 많고 홀이 좀 시끄러운 편이라서 나라도 질문 있냐는 물음에 손들고 질문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발표 시작할 때 Slido 같은 사이트의 링크를 주고 발표 도중 온라인으로 질문을 받아 답변하는 식으로 준비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웹 접근성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야기들이 정말 흥미로웠는데 마이크 없이는 목소리가 멀리까지 전해지기 힘든 환경이었어서 많은 청중들이 질문자의 목소리를 못 들었을 것 같다. 이때 빠르게 판단해서 내가 사용하고 있던 마이크 헤드셋을 벗어서 질문하는 사람들에게 마이크를 건네줬으면 어땠을까 싶다.

발표 내용적으로는 웹 접근성 이론에 대한 얘기가 많았던 게 좀 아쉬웠던 것 같다. 다음에는 좀 더 밀도있는 프로젝트 경험을 통해서 실질적으로 시도해볼 수 있는 액션아이템을 담으면 좋을 것 같다.


사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발표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있다. 그래서 발표 한번 한 거 가지고 이렇게 유난을 떨 일이냐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게는 발표가 진짜 어려운 일이었고, 한번에 이뤄낸 일은 아니었다. 발표를 하기까지의 과정을 돌아봤을 때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징검다리 삼아 밟아온 덕분에 발표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분들에게도 특히 발표가 도전하기 어려운 영역일 수 있다. 기술 발표가 어렵다면 내 이야기를 하는 것부터, 오프라인 발표가 어렵다면 온라인 발표부터 작게 시도해보면 좋을 것 같다. 실제로 나도 개발자로서의 첫 발표는 내가 개발자가 된 이유를 공유하는 온라인 발표였다. 그런 작은 경험들을 하나둘 쌓다 보면 절대 나는 닿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높은 곳에도 언젠간 닿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고 싶지만 실제로 실천하기는 어려웠던 일, 다른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는 접점을 만들고 싶은 일이 있다면 발표에 도전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이런 뜻깊은 기회를 만들어주신 FEconf 오거나이저, 스태프, 피드백을 나누었던 라이트닝 토크 스피커, 발표를 들으러 와주셨던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보냅니다. 마지막으로 FEconf에서 발표했던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공유하며 긴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