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를 하다가 오래 전 물건을 찾았을 때. 처음 온 곳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전에도 와봤던 곳일 때. 우연히 오래 전 알았던 사람의 이름을 발견했을 때. 정말 까맣게 잊고 있던 기억이 화르륵 되살아날 때가 있다. 그런 순간들을 만날 때마다 기억은 사람 안에서만 사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나를 만든 조각들은 언제 만들어졌는지, 언제 흘렸는지도 모르게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그래서 삶의 지도라는 표현이 마음에 와닿았다. 지도에는 궤적이 없다. 궤적이 없으니 처음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지금껏 걸어왔던 모든 길을 다시 거쳐갈 필요가 없다. 지도는 그냥 조각들이 어디에 있는지만 알려줄 뿐이고, 그 지점들을 어떻게 이을지는 지금의 내 마음에 달려있는 것이다. 글또를 신청하기 위해 오랜만에 나를 만든 몇 가지 조각들을 되짚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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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도가니
내가 진심으로 뭔가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중학생이었다. 글짓기 숙제가 있으면 늘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문장이 난무하는 글을 썼는데, 한번은 냅다 짧은 이야기를 써서 낸 적이 있다. 그때 처음으로 글을 잘 쓴다는 칭찬을 들었고, 그게 지금의 나를 만든 가장 중요한 조각 중 하나다. 그 뒤로 중학교 내내 문학 공모전에 나가며 선생님들께 ‘문학소녀’라 불렸다. 그 시절 인생책을 한 권 꼽으라고 한다면, 공지영의 <도가니>이다. 소설에서 다룬 성폭력 사건은 10년 동안이나 자행됐지만 결국 집행유예로 끝날 정도로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 소설 덕분에 이 사건이 알려지고 재수사까지 진행됐다. 그때 처음 글이 이런 일도 해낼 수 있구나, 글이라는 게 이렇게 멋진 거라면 나도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길로 국어국문학과 전공까지 하게 되었다.
인터뷰, 다큐멘터리, 그리고 연극
대학 시절 내내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질문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대학생 기자단 활동과 구인구직 사이트 인턴을 하면서 여러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인터뷰는 질문이라는 열쇠로 다른 사람의 세계의 문을 열고, 그 세계를 들여다보는 일 같다고 생각했다. 이 세상에는 어떤 질문들이 필요할까. 질문하기 점점 어려워지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꼭 잊지 말아야 하는 질문은 무엇일까. 이게 대학 시절의 가장 큰 화두였고, 그래서 다큐멘터리 영화와 연극을 닥치는 대로 보러 다녔다.
택배 박스와 포장마차
그러다 글이 진짜로 세상을 바꿀 수 있나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럼 직접적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일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래서 비영리단체에서 인턴을 했다. 기억에 남는 주 업무는 수업 때 사용할 교구를 박스에 나눠 담아 학교별로 택배를 보내는 일이었다. 하루 종일 택배 박스만 패킹할 때도 있었고, 그러다 막차 시간 바로 전에 퇴근하기도 했다. 그때 포장마차에 혼자 들어가서 안주도 없이 소주 한 병을 마셨던 기억이 난다.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내가 만든 잡지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비영리는 내 길이 아니다 깨달은 뒤에는 잡지 에디터로 취업 준비를 했다. 그때 대학생 패션 잡지를 만든 적이 있는데, 실물 잡지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꼈다. 일단 자본이 없다 보니 찍어낼 수 있는 부수도 적었고, 잡지를 받아주는 서점도 많지 않았다. 서점에 배치를 해도 사람들이 읽을 거라는 보장이 없었다. 혹시라도 지난 부수를 읽고 싶어져도 실물 잡지를 구해야지만 글을 읽을 수 있었다.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읽혔으면 하는 게 글쓰는 사람의 마음이다. 그런 고민을 하다 찾은 대안이 웹진이었다. 웹진은 사람이 직접 나르지 않아도 스스로 날아다닐 것이다. 웹진이라면 자본이 없어도, 혼자서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웹진을 직접 만들어보겠다는 일념으로 웹 퍼블리셔 교육을 들었다. 그렇게 웹 퍼블리셔로 1년 동안 일했지만 웹진은 만들지 못했다.
프론트엔드 개발자는 시빅해커의 꿈을 꾸는가
웹 퍼블리셔로 만들 수 있는 웹사이트에는 한계가 있었다. 실제로 유저와 상호작용을 할 수 있고, 데이터를 만들어내는 웹사이트를 만들고 싶어서 프론트엔드 개발자가 됐다. 이 한 문장 안에 2년 간의 취준 기간이 압축되어 있다. 이제 프론트엔드 개발자로 일한지도 3년이 되어 간다. 개발자가 된 후로 글도 거의 못 썼고, 그렇게 환장하던 연극과 다큐멘터리도 거의 못 보게 됐다. 한때는 그 모든 시간이 다 의미 없는 시간이 된 것 같아 공허해했었다. 이제는 그 조각들이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그 시간들 덕분에 나는 다른 사람들과 더 다른 내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는 일은 달라졌지만 나는 여전히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 그래서 시빅해킹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며 내가 가진 기술로 어떻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앞으로는 그 고민의 과정들을 꾸준히 글로 남기고 싶다. ‘내 조각 여기 있어요!’하는 지도를 보고 찾아온 사람들과 연결되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